"이런 곳이 성소일리가 없어."


 노 회장이 모두를 대신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불안한 표정은 사무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들여다 보는 듯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나지막한 한숨을 토해낼 뿐 그로서도 별다른 소득이 없어 보였다. 


 차가운 늦겨울의 새벽 바람이 퀴퀴한 냄새를 실어 왔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모두가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그 순간 저 멀리 어딘가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낡은 쇠붙이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조금씩 커져가는 그 소리에 하나 둘 씩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무언가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윽고 그 소리의 정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 뉘시여?"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이런 저런 잡동사니가 산더미 처럼 잔뜩 실린 낡은 리어카를 끌고 있는 노인이었다. 


 "날도 추운데, 이 오밤중에 이 험한 동네서 뭣들 하신대?"


 노인이 손잡이를 내려 놓으며 리어카를 세우고는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말했다. 노인의 땀냄새가 찬 바람에 섞여 날아 들었다. 


 "이건 뭐야? 얼른 내 눈앞에서 치워!"


 노우종 회장이 고약한 표정을 짓더니 지팡이로 리어카 노인을 가리키며 옆에 서 있는 운전 기사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러자 운전 기사가 그에게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리어카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어르신. 지금 저희가..."


 "리어카 할아버지!"


 반가움이었을까, 놀라움이었을까. 나는 예전 언덕길을 힘들게 오르던 리어카 할아버지를 알아보고는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작스런 내 말에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는 분이십니까?"


 사무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네, 저... 예전 동네에 살 때... 언덕길에... 그러니까 제가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려고..."


 나는 리어카 할아버지를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몰라 횡설수설했다. 


 "당신의 얼굴... 기억이 나."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사그라들 것 같은 얕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신상일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밴에서 내려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당신이었어."


 신상일의 말에 리어카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미간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얼굴을 활짝 펴며 웃었다. 


 "오호라, 그 집앞에서 혼자 울고 있던 꼬맹이로구먼!"


 리어카 노인이 반가운 얼굴로 신상일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짜다가 이지경이 되어뿟는고? 쯧쯧."


 리어카 노인은 혀를 차며 신상일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러자 신상일이 고개를 떨구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내게 씨앗을 주었던... 그 사람... 당신이 바로... 신수였군요."


 순간 공터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리워졌다. 노우종 회장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있었고, 사무장은 이 상황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운전 기사는 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영감탱이가 신수라고?!"


 노 회장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짜증내듯 말했다. 그러자 리어카 노인이 땀을 닦은 지저분한 수건을 옷깃 속에 말아 넣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럼 신수가 무슨 불 뿜는 용 맹키로 무지막지허게 생긴 줄 알았등가?"


 노 회장의 얼굴에 오묘한 표정이 스쳤다. 사무장은 내내 이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몸을 사리고 있다가 조심스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리어카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씨앗을 승계하러 왔습니다. 절차를 위해서..."


 "알고 있구마."


 리어카 노인이 사무장의 말을 끊고는 몸을 돌려 리어카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는 리어카 한쪽 그물망에서 소주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따서 몇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는 나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크으, 저 학생 하고는 이미 이야기를 나눠봤응께. 뭐 쪼매 혼란스러워 하고 있긴 하다만서도 문제는 없어 뵈는구먼. 요 꼬맹이가 씨앗을 물려주고픈 생각은 분명헌 듯 허고, 저 학생도 제 애비나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믄 씨앗이 필요헌 듯 허고."


 리어카 노인이 소주병을 든 손으로 신상일과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꼬맹이 니넌 인자 그 씨앗 필요 없으믄 그냥 저 학생한테 줘 뿌리라."


 그러면서 그는 소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뚜껑을 돌려 닫았다. 그리고서 소주병을 리어카 그물망에 넣은 다음 리어카 앞으로 가서 손잡이를 끙 하고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모두들 제 자리에 선 채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그저 멍하니 리어카 노인을 바라보고 있자니, 노인은 되려 우리 모두를 뚱한 표정으로 번갈아 보았다. 


 "아 뭣해, 비키잖고서. 짐 실어 날라야 항께."


 "이게 절차의 전부입니까?"


 사무장이 안경을 쓸어 올리며 리어카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리어카 노인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럼 뭘 더 하라는 거여."


 "아니, 그래도 절차라는게..."


 "어이코 거 그냥, 옛따 하고 줘 뿌리면 되긋구만 내가 직접 받아다가 전해돌라 그말잉감?"


 사무장의 말에 노인이 투덜대며 리어카를 다시 내려 놓고서 손잡이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신상일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여, 꼬맹아. 그 씨앗 이리 내 보거라."


 리어카 노인이 신상일의 눈 앞에 손바닥을 내 보이며 말했다. 다시 한번 찬 바람이 불어 닥쳤고 신상일의 앞 머리가 바람에 날리면서 그의 흐릿한 눈빛이 드러났다. 빛을 잃어가는 표정에서 그의 수명이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의 말에 신상일은 힘겨운 동작으로 손을 들어올려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 순간 노우종 회장이 운전 기사를 향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거센 바람소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차마 듣지 못한 듯 했지만 노 회장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나는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 노 회장은 지팡이로 운전 기사의 등을 탁 치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챙겨 온 거 얼른 이리 내!"


 노 회장의 말에 운전 기사가 허겁지겁 외투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얼른 내놔, 이 멍청아!"


 노 회장은 다시 한번 지팡이로 운전 기사의 등을 때렸고, 운전기사는 다급하게 외투 안주머니에서 시커먼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이러저리 눈치를 보며 그것을 노 회장에게로 건넸다. 




***




 신상일이 안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천천히 펼쳤다. 그의 손 위에는 조그만 씨앗 하나가 들려져 있었고, 복숭아 씨앗만한 크기의 그것은 배터리가 다 되어가는 손전등처럼 흐릿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수그러들고 있는 신상일의 수명과 닮은 듯 그 씨앗의 빛도 깜빡거리며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신상일이 씨앗을 손에 든 채 나를 보며 말했다. 


 "김선우..."


 그가 힘겹게 침을 한번 삼키고서 말을 이었다. 


 "네 나무는 그 누구도 찾지 못할... 비밀스런 곳에 심어 놓았어."


 그러면서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직 나만 아는 곳에 말이야. 그 누구도 몰라... 내가 죽으면... 네 나무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는 거지."


 당장이라도 빛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던 신상일의 흐릿한 눈에 잠시 총기가 돌았다. 


 "이제 이 씨앗을 너에게 넘기면... 너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되는 거야. 그 무엇도 너를 가로막을 수 없어."


 그는 이를 내 보이며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 약점이 없는 존재... 그야말로 '힘의 논리'의 정점에 선 존재가 되는 거야."


 신상일이 힘겹게 손을 뻗어 세계수의 씨앗을 리어카 노인의 손바닥 위로 가져갔다. 느릿한 그 모습에서 그가 마지막 남은 생명을 짜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노 회장이 은밀한 동작으로 운전기사에게서 받아든 물건을 양 손에 쥐고는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나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었다. 그저 머리가 멍할 정도로 큰 총 소리가 공터 안에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총소리와 함께 신상일이 비틀거렸다. 그는 이윽고 피가 쏟아지는 어깨를 거머쥐면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무너져 내렸다. 신상일의 손에 아슬아슬하게 들려져 있던 세계수의 씨앗은 리어카 노인이 내밀고 있던 손바닥에 차마 가 닿지 못하고 그대로 흙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제기랄 빗맞았잖아!"


 노우종 회장이 연기가 새어나오는 커다란 리볼버 권총을 양 손에 거머쥔 채 소리쳤다. 그는 콧등을 잔뜩 끌어 올린채 아랫 입술을 악다물고서 다시 한번 리볼버 권총을 신상일에게 겨누었다. 


 다시 한번 공터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노우종 회장과, 공터 한 가운데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신상일의 사이에 서 있었다. 그를 막아서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두 팔을 벌리고 노 회장의 앞을 가로막았을 뿐이었다. 몸을 중첩시킨다거나 리볼버 권총을 들고 있는 그의 팔을 쳐내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명치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옷 위로 피가 흥건하게 새어 나왔고 나는 내 복부에서 흐르는 피를 막아보려 손을 가져다 댔지만 피는 내 손을 타고 넘쳐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눈 앞이 어지러워지면서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째서..."


 나는 쓰러지면서 구부정한 자세로 권총을 들고 서 있는 노우종 회장의 바지춤을 붙들었다. 그러자 노 회장이 발을 흔들어 내 손을 털어내려 애쓰며 말했다. 


 "빌어먹을, 이 놈을 떼 내!"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운전기사사 나를 밀쳐냈다. 시야가 어지럽게 뒤틀리면서 나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쓰러졌다. 


 


***




 한차례 시커먼 장막이 시야를 가렸다가 서서히 걷혔다. 심장 박동에 따라 눈 앞의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를 반복했다. 기울어진 시야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신상일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앞에 말 없이 손바닥을 내밀고 서 있는 리어카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리어카 할아버지의 옷에는 신상일의 어깨에서 튄 피가 묻어 있었다. 


 눈 앞에서 노우종 회장이 사무장을 총으로 겨눈 채 구부정한 몸으로 씨앗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발견한 개의 모습 같았다. 그의 눈은 탐욕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손에 넣었어, 드디어!"


 씨앗을 손에 쥔 노 회장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사무장이 노 회장이 겨누고 있는 총구의 위협에 두 손을 든 채 말을 하고 있었다. 


 "신 실장님은 이미 김선우 군에게 씨앗의 양도 의사를 밝혔소! 당신이 씨앗을 가져봤자 아무런 가치가..."


 "승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어차피 갖지 못할 무한한 힘 따윈 관심 없다고!"


 노우종 회장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씨앗만 있으면 돼!"


 불규칙적으로 두근대는 심장 박동에 따라 꿈틀대는 시야 속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무장의 표정이 보였다. 


 "허어..."


 시야 밖에서 리어카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껍데기를 노리는 녀석이로구먼."


 이제는 가까운 곳인지 먼 곳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곳에서 노우종 회장은 탐욕스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힘이 사라져버린 세계수의 씨앗이 이 나라 밖의 부유한 능력자들 사이에서 얼마에 거래되는지 알고는 있나?"


 노 회장은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그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지. 너희같은 천한 것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가격이 아니야! 하나의 국가를 세우고도 남을만한 금액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대며 울렸다. 

 

 "세상의 부를 틀어쥐고 있는 수집가들이 이 껍질을 갖기 위해 돈을 쟁여놓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나는 몸을 움직이려 애써 보았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의 기운이 공터의 흙 바닥으로 다 빠져나가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한쪽 뺨을 흙 바닥에 댄 채 힘겹게 고개를 틀어 씨앗을 들고 있는 노 회장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입 가에는 거품이 일고 있었고 혓바닥이 징그럽게 입 주변을 훑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어. 그리고 신 실장의 저 끈질긴 목숨줄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렸지.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죽어버리면 곤란해. 씨앗을 어디다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내게는 그저 이 순간이 필요했다고!"


 노 회장의 손에 들려진 씨앗에서는 배터리가 바닥나고 있는 손전등처럼 빛이 깜빡이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바닥에 대고 있는 내 뺨에 복부에서 새어나온 피가 흘러와 닿았다. 


 "이전에는 그 배송기사 녀석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나는 귀한 기회를 한번 놓치고 말았어. 하지만 실수는 한번으로 족해."


 "지은우를 죽인건 결국 당신이었군. 파괴자들로부터 누명을 쓴게 아니었어."


 노 회장의 말에 사무장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노 회장이 씨앗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씨앗의 주인이 바뀌어 버리면 또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러기에는 내 남은 수명이 턱없이 부족하거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는 빛이 사그라들고 있는 씨앗을 내려다보며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빨리 그 빛이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신상일의 가늘어진 호흡이 느껴졌다.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있는 그의 등이 가늘게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목숨한번 질기구만, 시간을 좀 앞당겨주지."


 노회장이 다시 시야에 나타나 사무장을 겨누고 있던 권총을 신상일의 머리로 겨누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