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 된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고급 밴 차량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어둠속에 몸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차량의 겉 면은 광택이 없는 완전한 검은색이었고 오직 한 군데, 차량의 옆면에만 조그만 그림이 박혀 있었다. 그 그림은 광휘에 둘러싸인 금화를 표현한 그림으로 그 유명한 신성금융그룹의 로고였다.


 "속도를 더 내!"


 밴 안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노우종 회장이 몸을 일으켜 지팡이로 운전 기사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옅은 진동과 함께 차량이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다. 


 밴의 가운데 자리에는 네명의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출입문 바로 앞에 나와 사무장이 앉아 있었고 내 옆에는 노우종 회장이 그리고 사무장의 옆에는 신상일이 앉아 있었다. 신상일은 창백한 얼굴로 무거워 보이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려 애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밴에 오르기 직전에 또 한번 피를 토해냈다.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니 소름이 끼쳐왔다. 차량의 바닥에는 그의 입에서 떨어져 내린 핏방울이 군데군데 얼룩져 굳어 있었다. 그리고 말 없이 흐릿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입 주변에는 손 등으로 대충 밀어 닦은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좀 어떻습니까?"


 맞은편에 앉은 사무장이 내 팔에 붕대를 감고서 단단히 고정시키며 물었다. 총탄이 스쳐간 부분이 욱신거렸다.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사무장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사무장은 이내 시트에 몸을 부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차 창 밖으로 어둑한 숲의 배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나는 붕대가 감겨진 팔 위로 옷을 걷어내리며 물었다. 


 "성소로 갑니다."

 

 사무장이 안경을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성소 라구요?"


 "신수를 만나기 위해서죠."


 "신수?"


 나는 그의 말에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사무장은 다시 한번 안경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세계수에 깃들어 사는 존재로, 모든 '나무의 힘'을 관장하는 수호신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고서 그는 고개를 돌려 옆 자리에 팔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신상일을 쳐다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신상일이 힘겹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마지막 생명줄을 간신히 붙들고는 계시지만..."


 "...걱정마세요, 그렇게 쉽게 끈을 놓아버리진 않을 테니까."


 신상일이 눈을 감은 채 쿨럭거리며 웃었다. 그의 입 가로 시뻘건 핏방울이 일었다. 


 밴 안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안쪽 좌석에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에 기대 앉은 노우종 회장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떨리는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세계수가 있는 성소로 갑니다. 그 곳에서 신수를 불러내 곧바로 씨앗의 승계 절차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사무장이 자칫 불편해지려는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씨앗의 승계를 위해서는 신수 앞에서 일종의 절차를 거처야만 합니다. 그 절차의 첫번째는, 신수 앞에서 씨앗의 소유자인 신 실장님이 씨앗의 계승자인 김 기사님에게 씨앗의 양도 의사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의 말과 함께 우리가 타고 있던 밴이 터널로 진입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빠르게 지나가는 터널 조명에 의해 밴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형체들만이 흐릿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양도 의사를 밝히면 신수는 곧이어 '의도 확인'을 시작합니다. 씨앗을 계승하려는 자의 의도가 양도하려는 자의 의도와 같은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터널의 어둠 속에서 사무장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즉, 김 기사님이 신 실장님의 '힘의 논리'에 동의하고 씨앗의 계승을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하는 거죠. 의도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이 '의도 확인'이 승계 절차의 두번째입니다."


 사무장이 버릇처럼 안경을 쓸어올렸다. 그리고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이내 의지가 확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두 과정을 통과하면 씨앗의 소유권은 신 실장님에게서 김 기사님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김 기사님이 새로운 힘의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


 사무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량이 어둑한 터널을 지나 탁 트인 곳으로 빠져 나왔다. 차 창 밖으로 저 멀리 산 능선 너머로 도심의 야경이 펼쳐졌다. 


 신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노우종 회장의 표정은 내내 모종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사무장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연신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혓바닥을 내밀어 입술을 적셔댔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식사 시작을 알리는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 같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사무장이 말했다.


 "노 회장님은 세계수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혀로 입술을 훔치던 노 회장이 콧잔등을 치켜 세우며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이 승계에 크게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사무장은 그런 노 회장의 태도에 맞장구라도 쳐 주려는 듯 그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노 회장님은 세계수가 있는 성소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정말 큰 역할을 해 주신 분이십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희생하셨죠."


 사무장의 말에 노 회장이 옅은 헛기침을 두세 번 하더니 자신의 손 안에 쥐어진 휴대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이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쏟아 부었는지 자네들은 상상도 못할걸세."


 그는 다시 한번 옅은 기침을 하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상일의 가늘지만 거친 숨소리만이 차량 안을 채우고 있었다. 




***




 능력을 발현하게 해 주는 힘의 원천 세계수. 그리고 그 세계수의 모든 힘을 관장하는 수호자 신수. 이 모든 말들이 내게는 그저 막연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게는 그 말들은 부정할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반면에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들은 그 황당한 이야기들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팔은 더욱 욱신거렸고 머릿속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신수를 불러내기 위해 세계수가 있는 성소로 간다는 말에 나는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차량이 더욱 깊숙한 산 속으로 향할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차량의 행렬은 도심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한 이 기분은 나 말고도 사무장 역시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사무장이 조금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노우종 회장에게 물었다. 


 "성소의 위치는 확실한 거겠죠?"


 양 팔을 지팡이에 의지한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노 회장이 사무장의 물음에 날카롭게 돌아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노 회장은 기분이 상한 듯 사무장을 노려보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로 돌리며 말했다.


 "신수를 대면할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어. 얼마 남지 않은 내 목숨도, 평생에 걸쳐 모은 내 재산도 모두 말이야."


 화가 난 듯한 노 회장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여전히 모종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신수를 내 눈앞에서 볼 수만 있다면... 단 한번이면 돼..."




***



 

 우리가 타고 있던 밴이 도심으로 접어 들었다. 창 밖 풍경으로 나무들이 사라지고 건물들이 나타났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 사이로 낯익은 건물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띄었다. 나는 좌석 등 받이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틀어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익숙한 도로와 건물들 너머로 내가 다녔던 학교의 건물이 보였다. 문득 성재와 함께 운동장 담벼락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운 곳이군요."


 나는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상일이 안쪽 좌석에 몸을 부린 채 힘 없는 눈빛으로 차 창 밖의 어둑한 학교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분을 숨기기에 학교만한 곳이 없지요."


 사무장이 금세 저 멀리로 사라져 가는 학교 건물을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무장의 말에 신상일이 피식 하고 웃더니 이내 눈을 내리감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나는 다시 차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벽 시간의 도로는 막힘없이 뚫렸고 우리가 탄 밴은 한번의 정차도 없이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높은 건물들의 번화가를 지나 이제 주택가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타고 있던 차량이 이대로 도심을 빠져 나가 시 외곽으로 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차량이 도심을 벗어나기 전에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허름한 주택가의 한 이면도로로 꺾어 들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높은 능선이 눈 앞에 저 멀리 나타났고 우리는 이내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사무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곳에 성소가 있을리가' 라며 의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운전 기사의 능숙한 솜씨로 겨우겨우 골목 끝까지 다다르니 조그만 공터가 하나 나타났다. 밴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어 공터 한 쪽 구석에 멈춰섰다. 


 "여기가 분명해?"


 노우종 회장이 운전 기사의 어깨를 지팡이로 치며 물었다. 


 "가르쳐 주신 주소는 여기가 분명합니다."


 운전 기사가 지팡이로 맞은 어깨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사무장이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밴에서 내려섰다. 그 뒤를 내가 따라 내렸고 마지막으로 노 회장이 운전 기사의 부축을 받아 땅에 내려섰다. 신상일은 옅은 숨을 내쉬며 밴 안에 그대로 앉아서 열려진 차 문 밖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우리는 모두 어두컴컴한 공터에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들고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펼쳐진 언덕 위에 누더기처럼 빼곡히 들어찬 판잣집들. 싸늘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마치 관절염을 앓고 있는 노인의 신음소리같은 나무 삐걱대는 소리들. 도심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지저분하고 불안해 보이는 거대한 판자촌 앞에 우리는 서 있었다.